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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도구

Carl Zeiss Jena Biogon 3.5cm f2.8 Contax Mount

 올해 첫 리뷰를 작성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목성12호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원본 비오곤에 대한 갈증이 점점 짙어져 갔다.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냐고 스스로 포기했다가, 다르면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이냐며 괴로워 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원본 비오곤을 손에 들어보게 되었다. 제발 목성12호와 괄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기를 바라고 기원하며 초가을부터 늦은 겨울까지 짧지만 밀도 있게 사용해보며 모아 온 결과물들로 이번 리뷰를 시작해본다.

 

 외관을 살펴보기 전에 이 렌즈를 소니 바디에서 쓸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많은(혹은 일본의) 라이카 사용자들의 꿈이 라이카 바디에 이번에 소개할 Pre-World War II(이하 '전전') 비오곤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전전 비오곤의 카피인 목성12호를 라이카 바디에 아주 잘 사용하고 있던 나로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콘탁스 마운트 어댑터와 거리계가 연동이 되지 않을 뿐 목측식으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 착각을 했다. 마운트가 되지 않는 자세한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기로 하고, 다시 외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제짝인 Contax II, III 바디 또는 Nikon S 시리즈에 장착되는 아름다운 모양새와 다르게 매우 구차한 모습으로 소니 바디에 달려있는 모습을 보자니 참으로 짠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구차하게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미세한 부분이지만 서독제 보이그랜더 크롬 필터와 좋은 궁합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기쁘다. 이전에 사용해봤던 조나, 테사와는 다르게 이 렌즈에는 자체 헬리코이드가 있다. 그래서 조나, 테사와는 조금 다르게 아마데오 어댑터와 조합이 된다. 콘탁스 RF 렌즈들은 조나처럼 렌즈 자체에 헬리코이드가 없는 경우는 Internal Bayonet (초록색 화살표)에 마운트 되고 , 비오곤같이 렌즈 자체에 헬리코이드가 있는 경우는 External Bayonet (파란색 화살표)에 마운트 된다. 렌즈와 어댑터를 모두 무한대 상태로 고정하고 렌즈의 베이요넷 (빨간색 화살표)이 렌즈의 베이요넷에 잘 맞게 끼워 넣고 돌리면 라이카 M 마운트로 변환이 된다. Techart LM_EA7를 사용하는 경우 자동초점이 잘 맞지 않아 보이그랜더 헬리코이드 어댑터와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렌즈도 황동, 아마데오 어댑터도 황동, 보이그랜더 어댑터도 황동으로 되어있어 엄청 무거워지는 것이 단점이다.

 

 목성12호와 코팅 색을 비교해 보니 확연히 보라색과 푸른색으로 차이가 난다. 조나의 코팅과 보라색이 두드러지는 점은 비슷하지만 조나는 보라색과 앰버 색이 섞여있다면 비오곤은 보라색과 푸른색이 섞여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전전 비오곤은 무코팅이 대부분이지만 수출품 중 일부 렌즈에는 T 코팅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제 피눈물이 나는 포인트로 넘어가 보자. 대체 왜!? 목성12호는 되는데! 비오곤은 안되는 것인가! 정답은 렌즈의 후옥을 감싸고 있는 구조물의 유무에서 차이가 났다. 비오곤은 마지막 렌즈를 감싸고 있는 경통 구조물이 있는 반면 (렌즈 비교 사진 빨간색 화살표) 목성12호는 렌즈를 감싸는 경통이 있기는 하지만 (렌즈 비교 사진 파란색 화살표) 렌즈 끝까지 덮고 있지 않다. 그래서 결국 M240 마운트 내부의 상부 캠축, 하부 노출계 구조물 (바디 사진 빨간색 화살표)에 앞서 언급한 경통 구조물이 닿아 렌즈가 들어가지 않아 마운트 자체가 되지 않는다. 해결책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목성12호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콘트라스트가 진한 느낌이 인상 적이었다. 가을과 겨울 동안 사진을 찍어 좀 더 진득한 맛을 내려한 경향은 있겠지만 그래도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둡고 밝은 부분은 더 밝은 느낌이었다. 분명 기분 탓이겠지만 목성12호 보다 화질도 훨씬 좋게만 느껴졌다.

 

 조리개를 최대로 열었을 때 주변부는 목성12호와 마찬가지로 비네팅도 꽤나 진하고 화질 역시 많이 무너지는 편이다. 애초에 디지털 바디를 위한 렌즈가 아니다 보니 무리도 아닌 것 같다. 다만 목성12호와 다르게 좌, 우 최외각 변부에 발생하는 마젠타 캐스트는 거의 없는 듯하다.

 

 보케의 표현은 목성12호와 거의 비슷하다. 사실 최소 초점거리인 1m 에서 배경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극적인 배경 흐림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헬리코이드 어댑터를 사용하여 최소 초점거리를 줄여야지만 조나/비오곤 스러운 보케가 발생한다. 이미지 중앙부에는 원형에 가까운 빛망울이 외곽으로 갈수록 중양으로 모여드는 형태를 거쳐 최외곽에서는 화살표 모양이 된다. 조나와 마찬가지로 잔가지, 이파리 같이 복잡한 배경이 있을 때 더욱 화려한 배경 흐림을 보여준다.

 

 테이블 위의 먹고 마실 것을 찍기에 35mm 만한 렌즈가 없다. 행여나 라이카 바디에 비오곤을 쓸 수 있었더라면 최소 초점 거리인 1m 씩이나 떨어져서 찍어야 해서 엄청 불편했을 텐데, 다행히 소니 바디에 쓸 수밖에 없어 초점거리를 줄여 편히 찍을 수 있다. 게다가 거리계 연동조차 되지 않아 얼마나 불편했을지! 어휴, 상상도 되지 않는다........

 

 허튼소리는 잠시 옆에 치워두고, 왜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고자 한다. 확실히 근거리에서는 핀쿠션 왜곡이 눈에 뜨인다. 사실 핀쿠션 왜곡이 있는 결과물을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다. 하지만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 보정 툴로 쉽게 보정할 수 있는 정도다. 반면 원거리 왜곡은 평행만 잘 맞추면 완벽에 가까운 액자를 선물해준다. 비오곤이 목성12호 보다는 왜곡이 좋은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목성12호는 대부분 시차가 존재하는 레인지 파인더를 통해 찍었고 비오곤은 찍히는 그대로 보이는 EVF를 통해 보았기 때문에 좀 더 평행에 유의하여 찍을 수 있었던 탓인 듯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조이면 선명합니다 코너'가 돌아왔다. 3.5~4.0 정도 조여서는 여전히 주변부 화질 저하가 보이지만 5.6~8.0 정도 조여주면 역시나 근거리 마저 이미지 전면의 화질이 좋아진다. 최대 개방에서 좋지 않던 비네팅도 조리개를 조이면 한껏 좋아진다.

 

 빛이 강한 날이나 밝기 차이가 많이 나는 피사체가 같은 장면에 있을 때 글로우나 플레어는 쉽게 발생하지 않았다. 사광에 의한 플레어는 렌즈 구조물이 후드 역할을 해서라고 치더라도 직광에 의한 글로우가 적은 것은 놀라웠다. 하지만 광원이 아주 강한 경우에는 약하게나마 고스트와 플레어 모두 발생했다. 빛갈라짐은 조리개 날 수의 2배인 10가닥으로 쪼개진다.

 

비오곤 : 무한대 초점 f2.8
주피터12 : 무한대 초점 f2.8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우측 하단 주변부
비오곤 : 약 10m 초점 f2.8
주피터12 : 약 10m 초점 f2.8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우측 상단 주변부
비오곤 : 약 2m 초점 f2.8
주피터12 : 약 2m 초점 f2.8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12 / 좌측 하단 주변부

 다음으로는 목성12호와 비오곤의 광학 성능 비교가 되겠다. 먼저 무한대 초점에서는 두 결과물에서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네팅이나 중앙부와 주변부 화질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초점이 10m 이내로 가까울 때는 차이점이 조금씩 발생하다가 2m 즈음이 되면 그 차이가 극명히 나뉜다. 중앙부 화질도 비오곤이 좋기도 하지만 컨트라스트가 진해서 사물이 좀 더 쉽게 인지된다. 주변부 역시 비오곤보다는 목성12호의 화질이 한 단계 아래로 보인다.

 

비오곤 : 무한대 초점 f5.6
주피터12 : 무한대 초점 f5.6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좌측 하단 주변부
비오곤 : 약 10m 초점 f5.6
주피터12 : 약 10m 초점 f5.6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우측 주변부
비오곤 : 약 5m 초점 f5.6
주피터12 : 약 5m 초점 f5.6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중앙부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12 / 좌측 상단 주변부

 조리개를 5.6까지 조여 비교해보니 2.8 조리개의 결과물과 경향은 유사하고 중앙부, 주변부 화질 차이의 정도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점을 완벽히 같은 곳에 맞추지 못했을 가능성, 두 렌즈 간의 컨트라스트 차이, 촬영 조건은 통일했으나 촬영하는 시각이 달라 주변 환경이 완벽히 같지 않았던 점이 통제되지 않은 변인이다. 완벽한 실험은 아니었지만 뭉근하고 몽롱한 기분을 내고 싶으면 목성12호를, 깔끔하고 깨끗한 느낌을 내고 싶으면 비오곤을 사용하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오곤
주피터12
주피터12 : 컨트라스트 강하게 조정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좌 : 비오곤 / 우: 주피터

 마지막으로는 지난 테사 리뷰에 언급했던 색감에 관한 내용이다. 테사, 심라, 조나의 비교 결과보다는 좀 더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차이가 꽤나 커서 색깔마저 조금 달라 보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목성12호의 컨트라스트를 조금만 올려보면 비오곤의 색감과 거의 비슷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에서 렌즈 고유의 컨트라스와 색감의 변화량은 보정의 폭에 비하면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나 RAW 보정의 관용도를 생각해보면 이 두 렌즈의 차이는 한 뼘의 차이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합리화의 동물이 아니던가. 오리지널과 카피본 두 개를 모두 들고 기분에 맞게 쓰겠다는 똥고집에 가까운 주장을 미련하게도 하고 싶다. 주변부가 비슷하게 무너지더라도 눈물샘에 눈물이 차오르는 느낌은 목성12호만 낼 수 있고, 중앙부와 주변부의 극명한 대비를 통한 오묘한 느낌은 비오곤만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렌즈의 조합이 뒤통수를 뜨끈하고 축축하게 핥고 지나갈 정도로 강렬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35mm 렌즈보다 특색이 있었다. 이제 35mm에서 나올 수 없는 배경 흐림과 공간감에서 벗어나 주변부 무너짐과 중앙부의 대비, 컨트라스트, 훌륭한 왜곡을 무기 삼아 35mm & 50mm형 인간이 되어보고자 다짐해본다.

※ Jupiter-12 리뷰 링크 :


2019/02/25 - [손안의 도구] - Jupiter-12 (ЮПИТЕР-12) 35mm f2.8 L39 Mount

 

Jupiter-12 (ЮПИТЕР-12) 35mm f2.8 L39 Mount

오늘은 Jupiter-12 렌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렌즈는 Sonnar 구조를 변형하여 만든 Zeiss Opton 전전형 Biogon 3.5cm f2.8의 광학식을 가져다 썼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구할 수만 있다면 전전형 B..

no-bitchu.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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