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jifilm XF23mm f2.0 WR FX Mount

 이제 드디어 2년 2개월의 장기 출장을 마치고 현재 손안에 있는 마지막 렌즈의 리뷰를 작성해본다. 이전에 리뷰했던 XF18mm 렌즈가 후지 미러리스 렌즈의 기준이었기에 소음이나 AF 속도 등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터라 처음 사용했을 때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수동 렌즈만 주구장창 써댔으니 놀랄 만도 하고 남을 것도 같다. 자동초점이 구동될 때 소리도 거의 나지 않고 내부 경통의 움직임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반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초점이 맞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편한 물건을 쓸 수 있는 시대에 무얼 찾겠다고 불편한 수동 렌즈들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일단 렌즈의 외관부터 살펴보자. XF18과 마찬가지로 전자식 조리개 링과 포커스 링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완전히 원통 형태인 렌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항아리 형태보다는 XF23처럼 대물렌즈 쪽으로 갈수록 조금 좁아지는 형태가 그나마 좋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후드는 많이 아쉽다. 별도로 구매 가능한 원형 금속 후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XF23처럼 렌즈의 지름보다 길이가 긴 렌즈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따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JJC, Haoge 社 에서 사각 후드를 발매하여 구매해볼까 했지만, 렌즈의 주인이신 와이프님께서 딱히 원하지 않아 기본 후드로 잘 사용하고 있다. 렌즈의 진정한 의미는 외관 따위가 아니고 피사체와 사진이라는 것을 통달하신 분의 의견에 예쁜 외관만 좇는 나의 바보 같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렌즈의 구조를 살펴보자. 처음엔 Digram 상 1군과 2군의 거리가 꽤나 멀어 보여 레트로 포커스가 떠올랐으나 자세히 볼수록 레트로 포커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2,3,4군은 비오곤인가 싶더니 맨 뒤의 두 개의 렌즈군은 레트로포커스 구성과 비슷하다. 다만 초점거리를 줄여봤을 때 나타나는 보케는 중앙으로 모여드는 주밍 보케의 형태라서 그나마 비오곤의 특징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아니면 말고 식의 예상만 남겨본다.

 

 환산 화각 35mm의 광각인 데다가 조리개도 크지 않아, 2m~3m 거리의 피사체를 두고 사진을 찍으면 배경 흐림이나 전경 흐림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수도 없이 35mm 화각에서 50mm에서 나오는 배경 흐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 렌즈, 저 렌즈 사가며 똑같은 기대를 하고 똑같은 실망을 하고 똑같은 자책을 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현명한 인간은 아님이 확실하다. 한편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혹시나 보이그랜더 35mm f1.2 렌즈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다.

 

 사족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애초에 렌즈를 산 목적대로 팬포커스 공부를 위해 4.0 이상 조여 찍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최대 개방인 f2.0에서도 중앙, 주변부 할 것 없이 충분히 좋은 화질이어서 f4.0 정도만 조여줘도 충분히 모든 부분의 화질이 좋아 보였다. 렌즈 화질이 좋아 오로지 프레이밍과 색감만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7장인 35mm f2.0 보케 Sample

 항상 최소 초점거리 1m 이거나 더 짧아봐야 70cm짜리 렌즈만 쓰다가 간만에 '간이 접사'라는 현대 문명을 이용하여 보케의 특성을 부각해보았다. 비오곤 구조의 7장인 35mm 렌즈와 비교해보면 빛망울이 중앙으로 모여드는 형태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초점거리를 20cm 정도로 줄여보면 배경이 완전히 뭉개지는 현상을 보인다. 후지 바디의 특별한 색감이 더해져 뭉개진 배경이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것도 장점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촬영거리에서는 왜곡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XF18의 왜곡에 워낙 데여서 그런지 근거리 초점 왜곡은 애교로 봐줄 만한 정도이다. 광원이 크거나 흐리멍텅한 경우는 빛 갈라짐도 함께 흐릿한 느낌이지만 빛이 세고 점광원에 가까운 형태일수록 빛 갈라짐의 형태도 날카로워진다. 

 

 간이 접사가 가능해서 테이블 위 음식 사진을 찍어 자랑하기에 매우 좋다. 음식 사진 실력이 날로 나빠지고 있지만 그 대신에 요리 실력이 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드디어 렌즈 지금껏 사용해본 렌즈의 리뷰를 모두 마쳤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시간이였다. 리뷰를 위해 테스트를 하기 위해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생각하고 찍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소개했던 렌즈와 바디를 사용하여 찍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 예정이다. 한편으로는 뭐라도 렌즈를 새로 들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도 들지만 일부 손 안의 도구는 나의 품을 떠날 예정이기도 하고, 지금껏 리뷰했던 손 안의 도구를 심도 있게 사용해보며 새로운 매력을 찾아보는 쪽으로 매진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