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렌즈는 조금은 희귀한 렌즈이다. 구조적으로도 조나조은조나와 플라나의 기가맥히는 조합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가지고 있는 TLR을 만든 동경광학에서 만든 렌즈라는 점이 더욱 나를 끌어당겼다. 렌즈의 구조는 조리개 전 구성 요소는 조나, 조리개 후 구성 요소는 플라나로 되어 있다. 이전에 리뷰했던 7artisans 50mm f1.1 렌즈와는 정 반대의 구성이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심라와 비슷한 구조인 렌즈는 Fujinon 5cm f1.2와 Dallmeyer Septac 5cm f1.5 렌즈가 있다. 하지만 전설의 조나 Zunow 5cm f1.1나 괴물 Nikkor-N 5cm f1.1과 마찬가지로 매물도 많이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가격이 넘사벽이다. 다시 한번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각설하고, 아래의 렌즈 Diagram을 보면 조리개를 기준으로 전면은 2군 4매로 조나와 비슷하고 후면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플라나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 RF 렌즈와 별개로 SLR 렌즈 중 Takumar 58mm f2.0 M42 렌즈도 심라 구조와 비슷하다. 조리개 후면의 렌즈가 2군 2매로 구성되어 있는것이 심라와의 차이점이다. e-Bay 기준의 가격으로는 한 번쯤 써봐도 좋을 만큼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심라를 손안에 들이고는 마음을 접었다.
이 렌즈의 입수 경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모 포럼에서 이 렌즈를 가지고 계신 분이 렌즈 소개글을 올렸고, 나는 마치 불나방처럼 빠져들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무례를 무릅쓰고 방출시에 꼭 연락을 주십사 부탁을 드렸었다.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해보지 않아 부끄러움이 앞섰지만 친절하시게도 먼저 연락을 주셔서 지금은 손 안의 보물이 되었다. 양도받을 때 렌즈와 바르낙 카피 바디인 레오탁스 바디를 함께 양도받았다. 필름에 대한 갈망이 다시 한번 불타 올랐지만 언젠가 다시 필름을 시작하게 된다면 바로 이 바디와 함께 하면 되겠다는 안도감으로 아직까지는 욕망을 잘 참아내고 있다. (거짓말)
렌즈의 외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본다. 초점거리, 조리개도 똑같지만 디자인 역시 라이카 Summarit 5cm f1.5 L39와 거의 동일한 디자인이다. 지금까지 써본 렌즈는 대개 심도 표시계 중앙과 조리개 수치계의 중앙이 딱 맞아 있었지만 심라는 약 10도 정도 오른쪽에 표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무한대 스토퍼도 비슷한 형태로 달려있다. 마침 가지고 있던 보이그랜더 40.5mm 크롬 필터가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주어 매우 만족스러운 외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즈마릿과 마찬가지로 L39 마운트로 되어있어 LTM 어댑터를 사용하여 라이카 M바디나 기타 어댑터를 경유한 카메라와 사용하고 있다. 사족을 붙여보자면 나사 형태로 되어있는 마운트이기에 LTM 어댑터를 적용하는 경우 렌즈가 정중앙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렌즈는 정확히 중앙에 위치하여 기분을 한층 좋게 해 준다. (안타깝게도 소유하고 있는 목성12호는 약간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ㅠㅜ)
조나조은조나의 코팅과 비교해 보면 옅은 하늘색으로 T코팅의 연보라빛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 때문인지 뉴트럴한 색감이 일품이다. 디지털 현상을 통해 약간의 색감을 보정하긴 했지만 그립고 쓸쓸한 느낌의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 리뷰 했던 목성12호와 비교하면 뉴트럴함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것이 미세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나와 더블 가우스의 조합인 만큼 배경흐림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소 초점거리인 1m 근방에서는 플라나의 특징인 회오리 보케가 강세를 펼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회오리 보케는 점점 약해지고 조나의 묘한 입체감이 살아난다. 근거 없는 갬성으로 표현해보자면 점묘화, 유화적 표현이 공존하며 조나에 비해서는 보케의 경계가 뭉개져서 좀 더 몽환적인 느낌이 난다고 우겨보고 싶다.
소니 a7m2와 Techart LMEA7의 조합으로 조금 더 초점거리를 줄여보면 완전히 회오리치는 보케를 만나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경 흐림의 보케와 배경 흐림의 보케가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부 배경 흐림 보케는 플라나의 캣츠아이와 조나의 찹쌀떡의 중간 형태인 해파리 머리 형태를 보인다. 반면에 전경 흐림 보케는 중앙부에서는 조개껍질 모양을 띄고 주변부로 갈수록 조개껍질이 커지다가 극 주변부에서는 종이비행기 같은 형태를 보인다.
최대 개방 화질은 조나와 비교하면 한 단계는 아래로 보인다. 이전에 소개했던 Fujinon 55mm f1.6 렌즈의 결과물처럼 초점이 맞은 영역까지 뿌옇지는 않지만 초점이 맞지 않은 영역은 금세 뿌옇게 되는 느낌이다. 게다가 라이카 바디에서 약간 전핀으로 초점이 틀어져있어서 인물사진에는 f2.8 정도로 조여서 찍거나 소니 a7m2와 Techart LMEA7의 조합을 사용하게 된다. 최소초점거리인 1m 근방에서는 뿌예지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뿌옇고 바람에 흔들리는 느낌이 동시에 있어 근거 없는 필름라이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만 같아서 몹시 좋았다. 주변부 화질이 좋지 않는 부분에서 화질 저하를 동반한 붉은 끼가 낀다던지 하는 색 틀어짐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가 아녔을까 하는 되지도 않는 망상도 해본다.
그리고 모든 렌즈가 그러하듯이 조이면 선명하다. 매번 똑같지만 중앙부 주변부 차이없이 엄청나게 선명하다. 이제는 미니타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로모도 조이면 쨍한 거 이미 알고 있다.
많은 작례는 없지만 직광에 의한 플레어나 고스트는 오래된 렌즈임을 감안하면 훌륭한 수준이다. 하지만 옆에서 들이치는 빛에 의해서는 플레어가 강하게 발생하였다. 빛갈라짐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 듯하다. 조리개 날수는 12매여서 12갈래로 갈라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나마 건진 한 컷도 어쩌다 얻어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손안의 도구가 되어준지 약 3달 밖에 되지 않아 심도 깊게 써봤다고 할 수 없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추위를 뚫고 밀도 있게 써본 것 같아 뿌듯하다. 이 리뷰를 쓸 목적에 조나조은조나가 뒷전이 되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이제는 조나와 심라 중 무엇을 들고나갈지 행복한 고민을 할 나날들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가 좋아지는 새벽이다.
※ 관련 렌즈 리뷰 :
2018/11/25 - [손안의 도구] - Carl Zeiss Sonnar 50mm f1.5 Contax Mount
2018/09/09 - [지나간 도구] - 7artisans 50mm f1.1 M 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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