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안의 도구

Carl Zeiss Planar 35mm f3.5 Contax Mount

 올해는 이런저런 핑계로 렌즈를 사모으기만 했다. 그에 비해 리뷰를 단 한 개만 쓰기에는 양심에 걸렸다. 마지막 리뷰가 4월에 올렸으니... 해도해도 너무 한 것 같지만! 귀차니즘을 타파하고 용기를 모아 모아 키보드에 손가락질을 시작해본다.

 

 매물이 희귀하기 때문에 구하기는 만만치 않게 어려웠었었다. 비오곤이 부담스러운 고객층을 타겟으로 만들어졌지만 개체수가 얼마 되지 않아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전전, 전후 비오곤 보다 비싸게 거래가 되고 있다. 구하기 힘드니까 그래도 10년 안쪽으로는 써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만 한구석에 모셔두고 이곳 저곳 장터를 기웃거리다가 정말 운 좋게 렌즈를 구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렌즈를 구했다는데 정신이 팔려 라이카 바디에 아마데오 어댑터로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쉽게 짐작을 했었다. 전전 비오곤 처럼 후옥이 큰 것도 아니어서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개조 없이는 라이카 바디에 사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라이카 바디에 써보려고 삽질을 해봤다. 일단 렌즈의 후옥 구조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파란색 화살표로 표기된 아마데오 어댑터의 라이카 바디와 맞물리는 헬리코이드, 빨간색으로 표기된 콘탁스 바디와 맞물리는 영역, 마지막으로 초록색으로 표기된 렌즈 몸통과 렌즈 헬리코이드를 고정시켜주는 락링으로 구분해본다. 라이카 바디에 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초록색으로 표기된 락링이 무한대 초점일 때 촬상면 방향으로 가장 깊숙하게 들어가게 되는데 이 부분이 바디에 걸려 장착이 되지 않는다. 락링을 풀고 장착을 하게 되면 빨간색으로 표기된 구조물이 고정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파란색으로 표기된 어댑터의 헬리코이드와 연동이 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목측식으로라도 써볼까 했지만 초점을 돌리다 보면 반드시 고정되어있어야 하는 렌즈의 몸통과 헬리코이드가 나사처럼 돌아다니게 되어 핀이 엉망이 될 수 있다. 물론 EVF 등을 활용하여 찍을 수는 있겠지만 무한대가 고정되지 않는 렌즈를 어떻게 쓴단 말인가... 더군다나 어렵게 구한 귀한 렌즈를 이렇게 대충 쓰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절대로 이런 방식으로 쓰지 않기를 권해드리기 위한 정보 차원으로 남겨봅니다!) 렌즈가 도착하기도 전에 허겁지겁 구해 놓은 오리지널 35mm 자이스 파인더가 애처로워 증명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렌즈의 외관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렌즈의 형태는 전후 비오곤과 매우 똑같은 형태로, 간단하면서 기계적인 풍채를 가지고 있다. 코팅은 T코팅의 대표적인 보라색으로 빛나며 앰버 색도 살짝 보인다. 조리개 형태는 중간 구간에서 별 모양이 되었다가 원형으로 바뀌게 된다. 역시 제짝인 콘탁스 바디와 파인더의 조합이 가장 아름답다!

 

 렌즈 구조를 꽤나 오랫동안 뒤져봤는데 브로셔에 나와있는 구성요소가 5매 라는 정보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5매의 플라나라면 아마도 예전에 후지논 55mm f1.6 렌즈 리뷰에서 소개한 이런 구조가 아닐까 싶어 고민의 흔적만 남겨본다.

 

이미지 출처 : www.pacificrimcamera.com/rl/01390/01390.pdf
이미지 출처 : www.cameraeccentric.com

 라이카 바디에 귀한 렌즈를 쓸 수 없다는게 매우 애석하지만 올드 렌즈의 구원자! 소니 바디를 사용하여 쌓아 온 작례를 하나씩 꺼내 보고자 한다. 결과물의 첫인상은 발색이나 선예도가 최신 렌즈 못지않다는 점이었다. 워낙 글로우가 있고 색수차도 심하고 플레어도 쉽게 발생하는 렌즈가 취향이어서 아쉬운 부분이긴 했다. 70년이 다 되어가는 렌즈라면 요즘 쓰기엔 좀 안 좋은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취향이 갈려 아쉽지만 다시 한번 자이스의 집착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근거리 최대개방의 결과물부터 소개를 해본다. 소니 바디에 헬리코이드 어댑터까지 장착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1m 보다 가까운 초점거리를 즐길 수 있다. 화질이 좋아서 그런지 보케마저도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방사형으로 압축된 캣츠아이 형태의 보케는 이 렌즈가 더블 가우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오히려 테사 50mm 렌즈보다 회오리 느낌이 적은 것은 놀라웠다. 

 

 당연한 소리지만 조리개가 3.5이기 때문에 근거리를 벗어나 3m~5m 정도에서는 최대개방이여도 배경 흐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XF23 렌즈 리뷰에서처럼 오로지 프레이밍과 색감만으로 팬포커싱 사진을 연습하기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가지고 있는 콘탁스 렌즈 중 가장 컨트라스트가 강하고 화질이 좋은 렌즈이다 보니 보정도 왠지 최신 기기를 사용하여 찍은 것처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최대 개방에서는 비네팅이 많이 심했다. 사실 많이 심하다는 것도 최신 렌즈들과 비교해서 그렇지 나의 기준에서는 이 정도 비네팅은 정말 애교에 가깝다. 

 

 다음으로는 원거리 초점 작례로 넘어가본다. 최대 개방 이어도 화질이 매우 좋다. 전후 비오곤을 구해놓고 아직 쓰지도 못하고 있는데 전후 비오곤은 또 화질이 얼마나 좋을지... 이제는 겁이 날 지경이다. 조리개를 조금씩 조여보니 비네팅은 차차 좋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근거리에서 원거리로 이어지는 풍경에서도 전경 흐림은 아주 약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몽환적인 느낌을 내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

 

 다음으로는 근거리에서 왜곡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해 보았다. 왜곡이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캐논 35mm 리뷰에서 보았던 술통형 왜곡 수준은 아니였다. 구경이 크지 않으면 더블 가우스도 왜곡이 적어지는 것일까. 이론도 모르면서 결과물만 보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우습지만 몇 번을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MTF 차트로 사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얼렁뚱땅한 결론만 내고 넘어가 본다.

 

 35mm 하면 음식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소니 바디에  LM-EA7이나 헬리코이드 어댑터를 사용하여 찍었기 때문에 매우 쉽게, 아주아주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야심한 밤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있자니 단전부터 극심한 배고픔이 몰려와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이 귀한 렌즈의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워낙 사람 하나 없고 쓸쓸한 풍경을 좋아하고 낡고 지저분한 오래된 물건을 깔끔한 프레임안에 담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몇 번씩이나 이야기를 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아무튼 이 말도 되지 않는 필름-라이크는 낮은 컨트라스트로부터 시작해 특정 강조 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의 낮은 채도, 히끄무레한 초점 그리고 컨트롤되지 않는 각종 수차의 적절한 비율이 잘 비벼졌을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이기, RAW 파일로 보정을 하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유독 보정을 하다 보면 색감이 너무 비틀어진다던지 하는 바람에 결국 렌즈 본연의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분명히 낡은 곳에 가면 뿜어져 나오는 오래된 기운이 있는데 그 아우라를 잘 못 잡아 낸 것 같다. 렌즈가 너무 좋은 탓도 있을 테지만 1년 가까이 쓴 렌즈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잘못도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도회적인 장면을 찍어본다면 이 렌즈의 특성을 100%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렌즈보다 더 오래전에 구매하고 사용해온 렌즈가 몇 있다. 리뷰를 쓸 만큼 만족스러운 작례가 쌓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오랜 잠수 기간 후에 가장 먼저 리뷰를 쓰고 싶었던 렌즈는 이번 플라나 35mm 렌즈였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차피 손안에 들어온 콘탁스 RF렌즈들은 쉬이 손을 떠나보내기도 힘들기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이번 리뷰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한번 짚어 보고 그 이후에 해소하는 방향을 다짐하기 위해서 오랜 침묵을 깨고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이번 리뷰를 오랫동안 리뷰를 기다려주신 렌즈 판매자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