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ㅋㅋㅋ"를 연발하고 싶은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렌즈는 지인께서 장기간 대여를 해주셔서 마음껏 써볼 수 있었던 귀한 렌즈이다. 이 렌즈는 '쿸스판'으로 줄여서 부르는데 지금은 정밀 측정 기기를 제작하고 있는 Taylor Hobson에서 제작한 Arriflex 영화용 렌즈를 M mount로 개조하였으며 쿠크 스피드 판크로를 줄여 쿸스판으로 부른다. 올해 초에 8매 레플리카를 제작했던 Light Lens Lab에서 이 렌즈를 복각하여 조금 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사실 원본을 써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복각렌즈로 맛만 봐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이렇게 원본을 써보게 되니 복각에 대한 열망은 없어져버렸다.
우선 외관을 살펴보자. 시네 렌즈의 원래 모양새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플랜지백을 맞출 수 있는 구조물이 추가되어 있다. 시네렌즈답게 렌즈 앞으로 Shade를 겸한 구조물이 있어서 조금은 길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촬영 시 초점 조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토끼귀 같이 생긴 탭이 두 갈래로 나와있다. 위 두 특징은 복각 렌즈에서도 어느 정도 차용하여 사용하는 재미를 늘려주었다. 이 외에도 렌즈 몸체에 세밀하게 음각되어 있는 글자들을 보면 기존에 많이 대했던 사진용 렌즈와는 느낌이 달라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 렌즈 코팅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색깔이 궁금해 남겨보았다. 푸른색! 벽안의 영국 신사는 어떤 결과물을 안겨 줄지 매우 기대되었다!
간단한 이력과 역사 정도는 언급하면 좋겠지만, 시네렌즈가 좋다고만 들은 정도의 지식수준이라 이야기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부끄럽다. 게다가 오늘 소개할 렌즈가 달려있는 상태의 Arriflex를 찾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이 정도 느낌으로 쓰이던 이미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한창 이 렌즈를 쓰고 있는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방영해 주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호기심의 방 - 에피소드 8에서 잠시나마 만날 수 있어서 참 반가웠다는 것으로 조금 더 시간을 끌어보았다.
매번 리뷰를 쓸 때마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솔직히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원본 렌즈의 scheme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 붙어있는 diagram은 LLL사의 복각 렌즈의 구조이다. 사실 복각이라면 소재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구조(크기와 곡률)를 달리 하진 않았으리라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분명 더블 가우스 구조인데... 지금 까지 경험적으로 학습해 온 플라나 구조의 '쿠세'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조리개 기준 후면의 3군 접합렌즈가 유독 곡률이 큰 것? 정도 이외에는 전통적인 플라나 구조와 차이점을 꼽기 어려웠다.
역시 비싼 렌즈는 그 값을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구전 설화에 의해 몸값이 높아져 버린 걸까? 이 렌즈를 대여해 주신 분에게는 매우 죄송스럽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차한 설명을 대신해 조금은 많은 사진들로 설명을 대신해보고자 한다.
연세가 꽤 되시는 렌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우스 형태의 기본인 회오리 느낌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앙부의 날카로움과 주변부로 퍼지는 은은함의 대비가 무척 좋았다. 초점면 뒤편의 빛망울은 고양이 눈 형태가 발현되지 않고 납작해져 봤자 테사의 그것 정도였으며 역광에서 매우 적절하게 일부분만 대비가 무너지는 등.. 써보길 잘했다 / 괜히 써봤다를 수없이 고뇌했었다.
매번 리뷰를 쓰던 방식에서 어차피 벗어났으니 놀라움 순서대로 진행을 해보려 한다. 그럼 글로우, 수차, 등등 오래된 렌즈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특징 들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수차에 의한 보라돌이는 많이 억제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극단적이 명도 대비에 의한 글로우는 중앙부는 자연스러움 - 주변부는 그래도 강해 보였다. 역광 플레어는 잘 나타났지만 무코팅 조나처럼 순식간에 암부를 뜨게 하는 등의 콘트라스트 무너짐은 없었다. 플레어는 무지개 현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는 이 렌즈의 객관적인 성능보다 이 렌즈를 쓸 수 있음에 더 감탄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또 앞서 말했지만... 복각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열광해야만 할 렌즈인가? 하는 의문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LLL에서 8매를 시작으로 그다음 출시 한 것이 ELCAN인데 이 렌즈 역시 원본은 만나보지도 못할 렌즈였고 그다음이라면 8매만큼의 매력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솔직히 말해서 복각렌즈들의 작례를 보면 굳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과연 이 렌즈를 대여받았을 때 내가 이 렌즈를 좋아할 수 있을까 했던 의문이 들었었다는 이런 구질구질 한 변명을 하고 있는 이유는!! 천사 같은 마음으로 이 렌즈를 대여해 주셨건만 악마 같은 마음으로 의심이나 하고 있었던 나의 접시물 같은 마음의 깊이를 지인께 사죄드리고자 함이다. 그래서 인물 사진을 찍어봤더니 당연히 좋다! 70cm 연동이 되어있기 때문에 더 좋다!!
조여서도 찍어보고 다양한 빛 각도에서 찍어보아도 안정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오래된 렌즈일수록 반짝이는 도시의 조각들을 모으기가 좋다. 찍으면 찍어 볼수록 탐이 나는 렌즈였다. 왜!! 이런 렌즈를 빌려줘서는 눈을 높게 만드는지 약간은 화가 나는 순간도 있었다. ㅋㅋㅋㅋㅋ
마침 이 렌즈를 건네어 받았을 때 M9 바디가 새로 생겨서 신나게 결합해서 여기저기 다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존에 쓰던 M10-P와도 조합이 좋았지만 역시 여리여리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는 M9가 더 유리했다. 특히 카페에서 편하게 담기에도 좋은 감성이라 밀도 있게 써볼 수 있어서 좋았다. 리뷰를 쓰면 쓸수록 일기장에 쓰는 낙서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 렌즈만큼은 '리뷰'를 벗어나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나 보다.
잠시 딴소리를 해보자면 Speed Panchro 복각을 50크론 1세대 리지드 형태로 만들어 발매한다고 한다. 사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쿸스판을 써보기 전이었고 어차피 써볼 렌즈라면 조금 더 예쁜 형태가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굳이...라는 생각만 남게 되었다.
"빌려 드릴게요~ 편하게 써보세요~!" 이 말이 무서운 것은 알고 있었고, 그간 몇 번은 거절하고 몇 번은 당일에 몇 번 써보는 정도로만 했었는데... 이 렌즈는 도저히 거부하지 못했다. 너무나 궁금했고, 다시는 못 만날 거 같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써본 소감은 어떠냐고 물어보신다면..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서 이 렌즈 사고 싶어요... 먼 훗날에라도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 더욱더 본업과 육아에 충실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짐으로 이번 리뷰/일기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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