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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도구

Canon 35mm f1.5 L39 Mount

 매번 똑같이 '오랜만에 마음을 가다듬고 그동안 열심히 찍은 결과물을 정리해본다'는 서두도 지겨울 무렵, 갑자기 찾아온 봄처럼 이번 리뷰를 시작해본다. 렌즈를 구매한지는 1년이 넘어가지만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리뷰에 쓸만한 사진이 쌓이질 않았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가의 출생 즈음부터 함께 이 렌즈를 사용하여 많은 사진을 찍어준 터라 이래저래 정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100일 사진도 집에서 이 렌즈로 찍었기에 좀더 각별히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렌즈의 외관부터 살펴보자. 캐논 L39 마운트 렌즈 중 50mm f1.4, 50mm f.12, 19mm f3.5 렌즈와 색깔의 배치, 포커스 링의 형태 등이 거의 동일하다. 사실 이런 제브라 패턴보다는 아예 블랙이거나 실버였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렌즈 코팅색은 앰버색이 두드러지며 조리개는 조나처럼 특정 구간(f2.8~f8.0)에서 별모양이 된다. 클래식한 무한대 락이 장착되어 있고 필터 구경은 48미리로 가지고 있는 레인지 파인더용 렌즈 중에는 꽤나 큰 편이다. 필터도 제짝인 60년대 만들어진 캐논 필터를 사용했는데 슬림하기도 하지만 렌즈 전면에 네임링을 조금도 가리지 않는 구조여서 놀랐다. 요즘 생산되는 필터도 이런 구조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렌즈의 중앙과 LTM 어댑터링의 중앙이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Canon7 바디에 물려있는 사진을 봤는데 그것 역시 왼쪽으로 치우쳐있는 것을 봐서는 원래 그런 듯하다.

 

 다음은 렌즈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35mm 레인지 파인더 렌즈 중 더블 가우스 기반의 렌즈들과 비교해 보면 이번에 소개하는 렌즈의 구조가 조금은 특이한 것을 볼 수 있다. 솔직한 심경은 W-Nikkor 35mm F1.8 LTM 렌즈와 이 렌즈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면 니콘 렌즈 쪽을 택했을 테지만... 이런 행복한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언젠가는 궁금해서 한 번쯤은 써보려고 했었으니 결국 어느 시기에 해당 렌즈를 쓰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당장 내일 니콘 35mm f1.8 렌즈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잡설은 이 정도로 해두고, 다시 구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기타 더블 가우스 기반의 렌즈들과는 다르게 조리개 전면의 2군 4매의 구조는 아주 약간 토포곤이 연상된다. 대개 는 콘탁스 G 마운트 렌즈처럼 1군은 1매로 2군은 2매로 구성되어있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조리개 후면의 3군 렌즈도 3매의 접합 렌즈로 구성되어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렌즈의 정보에 대해 검색해본 결과 1958년부터 1971년까지 5173개의 렌즈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음은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근거리에서 배경 흐림 굉장히 화려한 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소니바디에서 헬리코이드 어댑터까지 사용하여 초점을 최소 초점거리인 1m 보다 더 줄여서 촬영하면 그 정도가 더 화려해진다. 배경흐림에서 나뭇가지나 풀잎처럼 직선부가 많은 경우에 더 빛이 더 여러 갈래로 나뉘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 리뷰했던 Fujinon 55mm f1.6 렌즈와 빛망울의 형태와 방향은 다르지만 그 화려한 정도는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렌즈 구조에서 조리개 전면의 2군의 렌즈가 2매씩의 접합 렌즈가 아니라 1매씩 단일 렌즈로 구성되었다면 후지논 렌즈와 구조가 거의 비슷해지는데 이런 이유에서 보케가 비슷하다고 느껴졌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Fujinon 55mm f1.6 (M42)

 다음으로는 빛망울의 형태를 살펴보자. 중앙부 영역은 원형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해파리 머리 형태가 되며 이미지 중앙부 쪽으로만 밝은 경계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조리개를 조여 별 모양으로 만들었을 때는 위치와 상관없이 별 모양의 형태와 크기가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사진은 근거리에서 크리스마스트리용 작은 전구를 흩트려놓고 찍은 것인데 중앙부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근거리에서 술통형 왜곡이 상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리개를 조이면 빛갈라짐이 조리개 개수와 같은 10 가닥으로 갈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근거리에서 중앙부는 과식 후에 불러온 배처럼 부풀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서 네 번째 예시는 2~3m 정도로 뒤로 물러섰지만 최외곽부에 기둥이 살짝 휘어있다. 다만 중앙부의 술통형 왜곡은 거의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 따라 영역별로 다른 왜곡은 처음 겪는 경우라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왜곡 보정으로 어렵지 않게 보정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조리개 최대 개방에서 네 귀퉁이 비네팅은 꽤나 강한 편이다. 주피터-12 결과물만큼은 아니지만 주변부의 해상도 열위는 중앙부와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글로우는 후지논 55mm처럼 전면에 나타나진 않지만 중앙부에서 주변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필름에는 좋은 결과를 보여줬을 테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 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모자란 특징과 그 대비가 나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서로 다른 잼이 들어있는 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결과물임은 확실하다.

 

 다음으로는 빼놓고 가면 아쉬운 '조이면 선명합니다' 챕터이다. 조리개를 조이면 강하던 비네팅도 상당 수준 좋아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로우와 보케는 정리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사실 리뷰를 하기까지 렌즈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은 아기의 사진을 찍거나 해먹은 음식 사진을 찍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상을 기록하기에 35mm만큼 편한 초점거리도 없는 것 같다. 조리개가 커서 아기와 거리를 가깝게 할수록 배경흐림도 상당해서 인물사진에도 좋았다.

 

 주변부의 왜곡이나 화질이 약간 아쉽다고 생각들 때쯤 나의 사랑 X-Pro1에 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대부분 L39마운트 렌즈들이 크기가 작아서 어댑터와 조화가 좋지 않은데 비해 렌즈가 크다 보니 제짝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보기 좋은 비율이 되었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50mm 대의 렌즈가 되니 금상첨화였다.

 

 크롭바디에서는 중앙부의 비율이 높다 보니 전체적으로 화질이 좋아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여전히 최외곽부의 글로우나 화질을 자세히 뜯어보면 여전히 상당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플레어도 심심치 않게 관찰되었는데 뚜렷한 형태가 아닌 어슴푸레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후지 바디는 확실히 JPG 색감이 좋아서 이런저런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적당히 찍어도 좋은 결과물을 내준다. 조리개를 조이면 조이는 대로 깔끔해서 좋고 조리개를 개방하면 화려한 배경 흐림과 좋은 색감이 어우러져 사진 찍는 맛이 있다.

 

 물론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하기에도 좋다. 아가용 장난감은 원색인 경우가 많아서 후지바디에서 색이 굉장히 야하게 표현되어 시선을 더 당기는 매력이 있다.

 

 리뷰의 방향이 기승전-후지가 돼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희귀한 렌즈인 만큼 결과물도 매력적인 렌즈임은 틀림없다. 올해 첫 리뷰를 쓰고 나니 밀린 숙제를 드디어 해낸 느낌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제습함에 있는 렌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자조적 헛웃음이 난다. 모든 것을 갖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손에 쥐어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매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스스로 우습게 느껴졌으면서 막상 렌즈들을 청소하려고 늘어놓은 컬렉션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애증이라는 양가적인 기분이 이런 것일까, 몰랐으면 소유하지 못함에 대한 결핍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반성 아닌 반성으로 마무리는 했지만, 내일이면 오늘과 똑같이 혹시나 놓치는 매물이 없을지 중고시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 렌즈를 판매하여 '지나간 도구'로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