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동물이다. 그렇게 필름라이크를 좇으며 필름은 사용하기 싫고, 그렇게 색감 타령을 하며 라이트룸 쓰기가 귀찮아 바디가 만들어주는 JPG만 사용하려한다. 그 와중에 바디는 예쁘면서 기능은 좋으면 좋겠다고 떼를 쓴다. 풀프레임이 아닌 것만 빼면 X-Pro1은 나의 말도 안되는 모든 욕망을 채워주는 카메라이다. 풀프레임이 아닌 것이 아쉬운 이유는 어떤 이미지 품질 때문이 아니고 Zeiss Opton 조나를 제 화각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X-Pro 시리즈가 풀프레임으로 나왔다면 라이카를 사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우선 외관을 살펴보자. 레인지 파인더 스타일의 바디이며 후면의 왼쪽 상단에 OVF/EVF 통합 뷰파인더가 있다.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OVF의 적용은 정말 다시없을 발상이다! 물론 X100 시리즈의 뷰파인더도 OVF/EVF 선택이 가능하지만 X-Pro1에서는 네이티브 렌즈의 경우 렌즈 화각에 맞게 뷰파인더 배율이 바뀐다. 기본적인 뷰파인더는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나 이 카메라나 똑같은 역갈릴레안이다. 다만 렌즈 초점거리에 연동되는 레인지 파인더가 없고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 줄 뿐이다. 게다가 초점이 맞으면 초점 거리에 따라 시차를 보정한 프레임이 뜨게되어 사진이 찍히는 영역을 광학뷰파인더에 표시도 해준다.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유일한 디지털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인 라이카 M 시리즈가 부담스럽거나 수동 조작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대안이라는 말이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 처음에 이 바디를 사용할때 렌즈터보와 함께 사용했었다. 당시에 가지고있는 대부분의 렌즈가 캐논 EF 마운트 렌즈였기도 하고 EF 마운트가 플랜지백이 기타 SLR 마운트 보다 짧아 어댑터 적용도 쉽고, 마운트 크기도 커서 M42나 C/Y등의 수동 마운트 렌즈들을 이종교배하기 좋아 렌즈터보도 EF 마운트용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렌즈의 원래의 화각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였지만 카메라 크기에 비해 렌즈부가 비대해 진다는 것이 단점이였다. 물론 후지필름의 컴팩트한 네이티브 렌즈를 사용 하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애초에 근거없는 필름라이크를 좇아 온 방향과는 맞지 않는 선택이였다.
그래서 결국 사용하던 M42, C/Y 마운트 렌즈들을 대부분 처분하고 헬리코이드 어댑터+라이카M 마운트 렌즈로 부피를 줄여보고자 했다. 일단 결론적으로 부피줄이기는 성공이였다. 여기서 도돌이표 처럼 맞게 되는 문제는 렌즈 본래의 화각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환산 35mm 즈음의 작고 적당한 조리개 밝기의 M마운트 렌즈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렌즈의 크기, 무게와 카메라와 어울리는 디자인 등을 고려하여 결국 Voigtlander 21mm f4 렌즈를 구매하기로 결정 했다.
원체 전투형 바디를 구매하는 바람에 까진 부분을 페인트 마카펜으로 가려보았지만 쉽사리 다시 벗겨지곤 했다. 중고가격도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여서 좀더 깨끗한 바디를 구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못된 습관중인 '뻬빠질'을 하기로 결심했다. 레니 크래비츠가 라이카를 벗겨내면 명품이 되고, 데미안 라이스가 피크질로 기타에 구멍을 내면 명기가 된다! 웨더링이라고 쓰고 뻬빠질이라고 읽는 행위를 시작하기엔 너무나 좋은 핑계 였다. 그렇게 사포질을 하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바디 뒷면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중얼거리며 작업을 했다. 화룡점정으로 렌즈에 사각 후드를 장착해주면 카메라 바디마저 필름라이크해진다. 여담이지만 마그네슘합금 바디를 깎아내면 황동 바디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화가 진행되어 점점 탁하게 변하게 된다. 탁해진 색깔의 정도는 아래의 네번째 사진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별별 짓거리를 다 해 놓은 것을 보니 이 바디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래서 화룡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눈동자 안에 동공을 그려넣기로 마음먹었다. 끈적하고 헐렁해진 고무그립을 완전히 떼버리고 좀더 '라이카'스럽게 만들어 보고싶었다. 그러나 쉽사리 맘대로만 될리 없다. 실제로 그립과 그립이 붙어있는 플라스틱 쪼가리를 떼보면 아래 사진처럼 나사구멍이 나있어서 그대로 두기에는 예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하며 몇날 며칠을 검색을 해본결과 aki-asahi 라는 곳에서 그립을 벗겨 낸 후 적용 할 수 있는 타입의 스킨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색깔은 빨간색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색과 재질이 있다. 하지만 구매 버튼을 누르기 직전, 이렇게 라이카가 가지고 싶었나 싶은 묵직한 자괴감이 뒷통수를 쳤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고무그립을 대채할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나무로 그립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였다. 만드는 방법은 자투리 나무를 조각칼로 깎고, 사포로 다듬고, 칠하는것이 전부이다. 가장 먼저 만든 것이 나무의 패턴이 마음에 들었지만 본래의 그립과는 잘 맞지 않았다. 몇번을 수정해 봤지만 이미 깎아버린 나무는 되돌아 오지 않는다. 두번째 깎은 것은 자리에 잘 들어맞았지만 나이테의 패턴이 영 좋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깎은 것이 두번째 사진의 바디에 붙어있는 그립이다. 나이테의 문양을 강조하기 위해 두번에 나누어 칠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드스테인을 1회 도포한후 잘 말려서 다시 고운 사포로 뻬빠질을 하고나면 나이테 부분은 색이 남아 있고 나이테가 아닌 부분의 칠은 살짝 벗겨진다. 이 상태에서 다시 한번 더 우드스테인을 발라 잘 말려주면 사진과 같이 나이테의 패턴이 강조된 나무 그립이 완성된다. 고무그립 보다는 미끌거리는 느낌이 들지만 적당히 도톰한 느낌 때문에 그립감은 소폭 상승한다. 물론 그립감때문에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카메라를 리뷰하면서 외관에 대한 내용만 말하고 끝나면 많이 부끄러우니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자 한다. DR400을 쓰기 위해서는 낮에도 ISO800을 사용해야만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리개를 조여 찍거나 ND필터를 적용하고 촬영했다. DR도 올라가긴 하지만 높은 ISO에서 발생하는 노이즈가 필름 그레인 같아 보여서 좋았다. 대부분은 아스티아 필름 시뮬레이션을 사용했고 채도를 올려 색이 파스텔/형광 톤이 나오도록 세팅 했다. 쉐도우톤, 하이라이트톤을 모두 약하게 해서 암부를 살리며 대비가 약하고 들떠 보이는 색감으로 설정 했다. 화이트밸런스는 Auto로 하되 전체적인 색온도가 낮아 보이도록 Blue 쪽으로 기준을 이동하였다. 사실 아래의 예시들은 전부 좀더 취향에 맞게 후보정을 한 것이라 이정도 보정이 가능하다는 정도로만 참고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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