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마지막 리뷰에서 밝혔듯이 올해는 50mm 이외의 렌즈를 좀 더 많이 사용해 보고 밀린 리뷰를 해보자는 의미에서 올해 첫 리뷰는 니콘의 전신인 일본 광학에서 제작한 W-Nikkor 3.5cm f1.8에 대한 내용을 다뤄보고자 한다. 이 렌즈도 영입한지는 꽤 오래되었긴 한데 중간에 다른 렌즈의 오버홀 및 핀교정을 위해 니콘 아마데오 어댑터를 함께 보내는 바람에 높은 밀도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이 기간에도 꾸준히 소니바디와 EVF로 조금씩, 천천히 작례를 축적해왔고, 어댑터가 없던 때 에도 35mm를 쓸일이 있다면 이 렌즈를 가장 먼저 골라 나갔다. 그리고 오늘 올해 첫 리뷰이자 가지고있는 니콘 레인지 파인더 렌즈 중 첫 리뷰를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외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본다. 이 렌즈는 본래 아마데오 등 어댑터를 경유하더라도 라이카 바디에 사용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거인광학 상인님의 개조를 통해 라이카 바디에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원인은 전전 비오곤 처럼 후옥 자체가 아니라 후옥을 감싸고 있는 구조물이 바디에서 초점이 연동되는 캠 축을 누르게 되어 장착 자체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에는 복각 35.8 까지도 가능하게 하셨다니 참 대단하다! 물론 LTM 버전을 사용하면 이 모든것이 해결되지만... 암튼 구하지 못할 것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니콘 바디에 물렸다면 마운트면이 딱 바디에 닿아 있어서 안정적인 모습이었겠지만 어댑터를 경유하기 때문에 해당 부분이 약간 두꺼워져서 약간은 만두 형태가 되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100만 원이 넘는 후드를 달아주면 좀 더 아름다워지고 만두형태가 희석되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매물조차 귀하기 때문에, 그리고 후드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에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에다가 43mm 필터까지 끼워주면 더욱 만두 형태가 도드라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다가 결국 할 줄 아는 단 하나의 방법을 써보기로 한다.
바로 갈아내기 신공이다! 이 렌즈는 특이하게 전면에 필터 쓰레드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43mm, 다른 하나는 48mm이다. 그래서 적당한 48mm 필터를 달아 옆면을 금속의 속살이 보이는 실버로 갈아주면 되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쉽게 되는 일은 없는 법이다. 48mm 필터가 흔하지 않은데다가 BW와 헬리오펜이 대부분이라 비싼 필터를 갈아내기도 그렇고.. BW의 경우는 황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8-49 업링 + 중저가 49mm ND 필터 + 갈아내기 조합을 생각해 보았다. 빠르게 주문을 하고 택배를 받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두께도 두껍고 높이도 높아서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옆면을 조리개 외경만큼 갈아내고 ND 필터의 윗면도 갈아내어 BW 필터 높이 정도로 만들어보았다. 이 과정에서 약간은 푸시온 필터처럼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많이 허접하긴 하지만 ND필터도 사용하고 생김새도 좀 더 취향에 가까워졌으니 만족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갈아내기 신공의 결과물도 소개해본다. 아마데오 어댑터를 사용하는 경우 50/75 프레임이 뜨게 되어있어 화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외장 파인더가 필요하다. 28mm도 아닌 35mm 프레임을 외장파인더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래저래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코이로 니콘 어댑터를 손에 넣은 기념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아마데오 어댑터는 35/135 프레임으로 개조하기로 했다. 프레임 셀렉터와 연동되는 부분을 갈아 주면 되는데 갈고, 확인하고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별다른 설명이 애매하지만 너무 갈아도 안되고 적게 갈아내도 안된다. 어쨌든 오랫동안 벼르던 개조를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조리개는 9장의 직선 형태이고 코팅색은 파랑/보라 와 앰버가 적절히 섞여있는 느낌이다. 네임링에 쓰여있는 W-Nikkor 옆, "C"가 붙은 렌즈도 있는데 초기형 렌즈에 Coated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잠시 잡설을 풀어보자면 테사 형태인 조리개 3.5를 시작으로 플라나 형태인 f2.5, 그리고 최종형태로 f1.8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렌즈 구조에 대한 이야기도 짚고 넘어가 보자. 제노타 구조를 기반으로 후옥에 1군 2매의 추가 요소가 있다. 대칭 형태를 기반으로 했지만 왜곡을 극한으로 억제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구성요소가 그 역할을 하는 게 아닌지 근거가 전혀 없는 비과학적 추측만 해볼 뿐이다. 이전에 소개한 후지논 55mm f1.6 M42 마운트 렌즈도 제노타 구조이긴 한데 이경우는 전/후가 뒤바뀐 제노타 구조여서 이 렌즈와는 보케 성향이 많이 다른 것을 확인했다. 아무튼 다른 플라나 구조와 비교하더라도 조금은 특별한 구조임은 분명하다. 이어서 결과물을 보면서도 밝히겠지만 현행 같은 쨍함 + 적당한 주변부 글로우 + 훌륭한 왜곡 억제력 조합으로 매력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
정말 이 렌즈에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딱 한 가지, 최소초점이 0.9m 인 점은 안타깝다. 이것도 렌즈 자체가 아쉽다기보다는 라이카 8매와 비교해서 아쉬운 점일 뿐이다. 8매 최소초점 거리가 0.7m 이기 때문에 비교가 될 뿐... 아무튼 0.2m의 목마름을 해갈해 보고자 소니 바디에 헬리코이드 어댑터를 장착하여 최소 초점 거리를 줄여보았다. 당연히 배경은 더 흐려질 것이고 보케는 더욱 화려해진다. 사실 결과물보다는 편의성 때문인데... 카페에 앉아서 테이블에 있는 음료를 찍을 때 몸을 뒤로 젖히지만 않아도 편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해 본다.
다음으로는 최소초점거리인 0.9m 및 그 근방의 결과물들이다. 빛망울의 모양은 타원형이긴 하지만 외곽 방향으로 좀 더 부풀어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그 부풀어 있는 부분의 경계가 좀 더 밝은 양상을 띄고 있다. 50mm 렌즈들과는 달리 배경이 확연히 뭉개진다는 느낌보다는 형체는 알아볼 수 있지만 잔잔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흐트러져있어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근거리는 아무래도 최대 개방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주변주는 초점이 맞았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글로우가 있고 비네팅도 은은하게 있어서 중앙의 피사체를 부각하는데 참 좋았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이전에 소개한 캐논 35mm f1.5 LTM 렌즈가 특성도 강하고 보케도 더 화려하긴 하다. 두 렌즈가 모두 훌륭한 렌즈이긴 하지만 나의 경우엔 화려 한 결과물 일 수록 순식간에 빠져들었다가 식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곤 한다. 그래서 캐논 35mm보다는 이 렌즈에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
다음은 일반적인 초점거리에서의 결과물이다. 글로우를 즐기기 위해 대부분 최대개방으로 촬영을 했으나 ND 필터가 없는 날에는 조금씩 조여서 찍곤 했다. 워낙 50mm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가 35mm가 너무나 광활하고 넓은 느낌이 날 때는 일부러 초점면 앞에 흐려질 구성요소를 배치해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는데 왠지 몰래 보는 느낌이 있어 간간히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역시 너무 가운데 위치해버리거나 너무 배치 비율이 높아져버리면 결과물이 산만해져서 적당한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전경 흐림의 느낌은 배경 흐림과는 달리 맥없이, 그리고 조금은 흥청망청 흩여져 버리는데 여기에 대부분 흐려질 요소들이 주변부에 있기 때문에 애초에 가지고 있는 주변부 글로우와 함께 아주 멍텅구리가 되어버리는 경우들이 생긴다. 역시 이 요소는 어디까지나 중앙부의 피사체를 부각하기 위한 엑스트라 정도로만 써야 좋을 듯하다.
다음으로는 원거리 및 조리개를 조여서 찍은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원경을 찍을 때는 하늘의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리개를 조이게 된다. 조리개를 조이면 원거리든 중거리든 주변부 글로우도 홀연히 사라지고 구석구석 꼼꼼히 선명해진다. 글로우는 많이 조이지 않고 2.8 정도만 조이더라도 거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매번 지겨운 소리겠지만 조여서 쨍하지 않는 렌즈는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읊조려 본다.
다음은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껏 경험한 렌즈가 많지는 않지만 광각일수록, 대칭형이나 디스타곤 구조의 렌즈 일 수록 근거리 초점일수록 왜곡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렌즈는 이 모든 것을 깨부순 렌즈이다. 변태같이 왜곡이 얼마나 심한가 보려고 최근거리 초점에서 격자무늬를 정신없이 찍어대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0.9m 근방이 아니라면 없다고 보면 될 정도이다. 0.9m 근방에서도 심한 느낌은 절대 아니며 편집증 환자처럼 주변부의 선들을 따라가며 보다 보면 '휘어 있는 곳이 있긴 있구나~" 정도이다. 비오곤 구조가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한 번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출시가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이 렌즈를 찾는 강력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변부의 글로우는 앞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강한 광원 근처에서 발생하는 빛 번짐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플레어도 오랜 기간 동안 몇 번 만나지 못했다. 색수차는 의외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요소들은 조금 좋지 않더라도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무코팅에 너무 중독되어 있진 않았나 뒤돌아 보게 된다.
이 렌즈의 느낌처럼 오랜 기간 공을 많이 들여 사진을 정제하여 리뷰에 올릴 사진들을 골라왔고 또 최대한 그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결과물들로 압축하여 산만하지 않은 리뷰를 작성하고 싶었다. 이렇게 리뷰를 끝내야 하나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 든다. 아직 8매를 만나 뵙지 못해 100% 확신을 할 순 없지만 가장 취향과 부합하는 35mm 렌즈라는 평을 내놓고 싶다. 접근성은 많이 떨어질 순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꼭 써보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리며 이번 리뷰를 마쳐본다.
※ 관련 리뷰 링크 :
2021.04.24 - [지나간 도구] - Canon 35mm f1.5 L39 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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